2013. 5. 13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칸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불어오는 '후끈'한 바람이 너무도 반갑고, 여행의 시작인 만큼 설렌 마음에 공항에서 우리에게 말을 거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친근하게 느껴지고, 다들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다.
짐을 찾고 공항 출구로 나가는 길 한쪽 켠에 'Tourist Information'이라고 아주 크게 붙여져 있고, 흰색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 열 댓명이 각자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칸쿤이 워낙 관광의 메카이기 때문에 당연히 관광객을 위한 저정도 서비스는 공항에서부터 제공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 테이블들 중 하나로 다가갔다. 워낙 대규모 부스였고, 어떤 회사명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상담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단지 우리 호텔로 가는 택시를 어디에서 어떻게 타면 될지가 궁금했고, 아직 아무런 예약도 안하고 왔기에 머무는 동안 치첸 잇챠를 어떻게 갈 수 있을지 정보를 얻고자 했다.
우리가 다가간 테이블에 상담원 A는 마치 오래된 친척을 보는 듯 아주 친근하게 대해 줬다. 그는 우리가 질문도 하기 전에 청산유수와 같은 말을 쏟아내며 오히려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살짝 꺼림칙하긴 했지만, 일단 얘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에 일단 하는대로 놔뒀다. 약 1분도 안되어 우리가 떠날 날짜와 묵는 호텔, 치첸잇차에 가고파 한다는 사실까지 알게된 A는 뜻 밖의 제안을 했다. $150을 지금 현금으로 내면, 내일 아침을 새로 오픈한 최고급 호텔에서 4명이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치첸 잇챠 관광까지 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그 호텔에서 제공하는 프리젠테이션을 90분 동안만 들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엥? 치첸잇챠를 가는 관광 프로그램이 원래 인당 $110 정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귀가 팔랑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손해보는 장사를 한단 말인가? A의 설명은 지금 Secret the Vine이라는 럭셔리 리조트가 새로 오픈을 해서, 이렇게 미래의 잠재 고객들에게 자기 리조트를 방문하게 해서 설명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중이랜다. 어차피 치첸 잇챠를 갈꺼면 비용을 반 이하로 아낄 수 있고, 게다가 밥도 공짜로 먹여 주고, 프리젠테이션만 한시간반 보면 다시 우리 호텔로 데려다 준단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겠지 하는 의심은 들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은들 뭐가 있겠어? 라는 생각에 우리는 모험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150불을 지불하니, 지 이름으로 영수증도 주고 내일 아침에 픽업 약속을 한다. 그 후로도 거의 20여분 동안 이게 확실한 건지 계속 정보를 캐낸 결과 별로 의심할 게 없는 듯 하여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아 참, 정작 중요한 걸 안물어 봤네...정작 우리가 오늘밤 묵을 호텔은 어떻게 가? 그냥 밖에 나가서 택시 타랜다 -_-;;
다음날 아침.
우리 넷은 혹시 이놈이 픽업을 오지 않더라도 원망하거나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우리 관광할거 하고 가자라는 가뿐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픽업 약속을 한 곳에 가니, 정말로 A가 와 있다. 그 전까지 가졌던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우리는 차에 실린 체 바로 근처에 있는 Secret the Vine 리조트로 향했다.
리조트에 도착하니, 직원들 몇 명이 나와 극진히 대접한다. 우리는 로비 안쪽으로 안내되었고, 그 곳에서 마케팅 담당 매니저가 와서 또 인사를 하였다. A의 역할은 거기까지...따라오던 이 녀석이 갑자기 인사를 하더니 도망치듯 사라진다. 음...뭐지...? -_-;
마케팅 담당 매니저는 또 어떤 직원을 불러다가 우리의 신상 조사를 자세히 하기 시작한다...이름, 직업, 나이 등등....내가 직업을 '학생'이라 밝히고 아버지가 은퇴하셨다고 말씀하시자, 다들 표정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ㅋㅋㅋ
조사를 마치자, 우리를 담당할 또 다른 매니저 B가 왔다. B는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하고는, 식사부터 하자면서 호텔의 부페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역시 새로 연 럭셔리 리조트 답게 식당은 음식의 퀄리티나 인테리어 모두 매우 훌륭했다. 도대체 나중에 어떤 숙제를 내놓으려고 이렇게까지 대접해 주는지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주위를 보니, 우리처럼 다른 매니저들의 손에 이끌려 식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상당수 보여서, 일단은 좀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일단 눈치 안보고 열심히 먹었다. ㅋㅋ B는 계속 우리보고 많이 먹으라면서 정작 자신은 과일 두 쪽 먹으면서 커피만 홀짝 거렸다. 식사를 마치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일단 이게 얼마나 대단한 리조트인지...그리고 이 호텔이 속한 리조트 체인이 어떤 것이고, 모회사에서 관리하는 체인들이 어떠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전 세계적으로 자기네 리조트 체인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등등...
그럼 그렇지...니들 리조트 회원권 팔아 먹으려고 하는 구나!!
그리고는 이제 일어나서 호텔을 이곳저곳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준다. 과연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규모와 호화로운 디테일을 자랑하는 호텔임은 분명하였다. 수영장과 식당, 스위트룸 등을 구경하면서 눈 호강은 실컷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엔 골드 회원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 좋은 이태리 식당에 데리고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원권 가격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맨 처음 아침 먹은 식당에서 이야기하던 가격은 1년에 $500 정도였나, 암튼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비싸긴 해도 어느 정도 reasonable한 가격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미국에 있는 1년 동안 여행을 열심히 다니기로 마음 먹었으니, 그정도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면 1년 하고나서 그만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내놓는 조건은 그게 아니다. 1년에 내야 하는 금액도 1천불이 넘고...게다가 40년 계약이랜다...@.@
무슨 노예 계약도 아니고, 40년 동안 해외 여행을 몇번이나 한다고 그 큰돈을 매년 갖다 바치라는 거냐...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니, 나보고 오히려 너 늙어 죽을때까지 몇 년 남았냐고, 그 동안 1년에 한번은 여행하지 않겠냐고...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반문한다. 아까 아침 먹으면서 그냥 가볍게 '너 어디 여행 하고 싶은지 5군데만 얘기해 봐' 라는 질문에 답했던 여행지들을 언급하면서 '너 여기여기여기 가고 싶다매? 거기 가격들이 얼만지 알아?' 이런 식이다. 우리보고 잘 생각해 보라면서 계속 종이에다가 수식을 적어 가면서 산수를 가르쳐 주실라고 하는데, 도무지 말이 안되는 금액들을 계속 적어내고 있다. 계속 우리가 거부하는 듯 하자, 이번엔 20년 플랜, 10년 플랜도 들고 나온다. 무슨 변액 연금 보험도 아니고...정말 말이 안되긴 모두 마찬가지다.
갑자기 지 혼자 힘이 딸리는지, Gerente를 부른다. 우리로 치면 매니저 위에 부장급 되는 사람이다. 매우 힘 좋아 보이는 무서운 눈매의 사람이 등장한다. 올백 머리에 셔츠 단추 두 세개 풀은 사이로 금목걸이가 보이는 모습이 마치 마피아 같다. 말하는 태도나 하는 짓은 완전 깡패다. 처음에는 B가 제시하는 말들을 똑같이 몇번 하더니, 우리가 완강히 거부하자, 갑자기 표정이 싹 바뀌면서, 강압적으로 바뀐다. "니들이 원하는 게 뭐야? 그럼? 니가 원하는 걸 말해봐" 이렇게까지 얘기가 나오자 참 당황스럽다. "그럼 1년짜리 플랜은 어때? 아예 2주짜리로 내가 공짜로 우리 호텔에 묵게 해줘?!" (물론, 영어로 했기에 반말은 아니었지만, 거의 이런 말투) 우리도 어이가 없어서, 이 호텔 체인 자체가 미국이나 중남미 쪽에 중점적으로 있어서 우리 같은 아시아인들에게는 큰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맞선다. 결국 우리는 너네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갑자기 지풀에 흥분하던 Gerente가 'Excuse me' 하더니 자리를 뜨고 저 뒷쪽으로 간다. 다시 자리에 앉은 B는 분위기가 좀 서먹해 진 걸 느꼈는지, 애써 웃으면서 다시 우리를 설득하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마음이 떠난 이후다. 한 시라도 빨리 이 곳을 뜨고 싶다. 몇 분 후 다시 Gerente가 우리 자리 옆을 지나가면서, B를 불러 손으로 목을 긋는 손짓을 한다. 저건 뭐지??? 그냥 단순히 그만하라는 건지, 아니면 우릴 묻어버리라는 건가? 그 Gerente의 마피아적인 외모와 그 손짓이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상당히 불쾌하면서도 걱정이 조금은 됐다.
그 손짓을 본 순간, B는 모든 설득을 중단하고, 오늘 자기네들과 함께 해 줘서 감사하다면서 다시 호텔 로비로 안내한다. 거기에서 진짜로 치첸 잇챠로 가는 4인 바우쳐를 끊어 준다. 그 후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로 다시 호텔로 무사히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온 이후 다음날 치첸 잇챠를 갈 때까지도 우리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최근 칸쿤에서 관광객 납치 사건도 몇 번 있었다고 하는데, 괜히 공짜 바랬다가 험한 일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마음 고생도 공짜로 밥 먹고 관광까지 한 것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멕시코인들의 친근함 뒤에 숨어 있는 상술에 한국에서 제법 현명한 소비자라고 자부하는 4인이 함께 당한 꼴이 되었다. ㅎㅎㅎ
'세상에 공짜는 없다' 라는 말은 참 쉽고도 많이 들리는 말이지만, 또한 잘 까먹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이번에 또 한번 느꼈다.
By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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