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3
미국에 온 이상 미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라는 미식 축구를 한번은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는데, 막상 경기 룰도 모르고 어떤 선수가 유명한지,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조차 모르니, Chicago Bears라는 NFL의 강팀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별로 관심이 가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번 시즌이 졸업 전 마지막 시즌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가을-겨울에만 열리는 미식 축구 시즌 특성 상, 지금을 놓치면 더 추운 겨울에 봐야 한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동기들과 부랴부랴 Chicago Bears의 경기를 예매하게 되었다.
Tailgating~!
테일게이팅이란, 원래는 왜건이나 밴 같이 뒷문이 위로 열리는 차량 뒤를 열고 그릴 등을 설치해서 바베큐 파티를 하는 뜻인데, 통상 이런 중요한 운동 경기 (특히, 풋볼)가 열리는 날에는 사람들이 몇 시간 일찍 경기장에 와서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주차장에서 이런 테일 게이팅 파티를 즐긴다. 즉, 경기 시작 전에 배를 좀 채우고 술기운을 올리면서 그날 경기를 충분히 즐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프로 스포츠가 하나의 지역 축제가 된다는 점과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미국 사람들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독특한 문화이다. 요즘에는 그냥 경기장 주변의 Bar 에서 술을 진탕 마시다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경기 있는 날만 되면 경기장 주변의 술집들이 북적북적하다. 우리도 아파트 파티룸에 모여서 간단히 테일게이팅을 하기로 했다. 비록 주차장에서 하진 않더라도 술기운 좀 올리고 따라할 건 따라해야지~!!!
그런데,
오늘 경기 시작 시간이 정오이다. -_-;; 평일엔 저녁에 경기하는데, 일요일 경기는 정오에 시작한다. 우리는 아침 10시부터 모여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뭔가 기분은 나긴 하는데, 다들 이거 꼭 해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ㅋㅋ 아침 11시 이전엔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기 때문에, 온 집들에 처박힌 술들 다 끌어내 와서 억지로 마셨다.
자, 이제 경기장으로 출발~!
Soldier Field (Chicago Bears의 홈 경기장)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이다. 걷기도 차 타고 가기도 애매한 거리인데, 날씨도 쌀쌀하고 해서 우리는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기사 하는 말이, 경기 있는 날에는 주변에 교통 통제를 하기 때문에 경기장까지는 못 가고 최대한 주변에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내려준댄다. 과연 경기장 주변에 오니, 위 사진처럼 차들이 엄청 막히고 여기저기 막아 놨다. 우리는 근방에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Grant Park 부근에서부터 Bears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Museum Campus에 이르자,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벌써부터들 술기운들이 얼큰이 올라서 여기저기서 소리 지르고 난리이다. 테일게이팅을 참 열심히들 했나보다.
가끔 이렇게 Detroit Lions (오늘의 상대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늘색)
드디어 Soldier Field가 보인다.
소지품 및 표 검사 등을 하는 곳에 이르자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뒤를 돌아보니, 뒤에도 사람들이 빽빽... 다들 모자, 잠바, 두건, 목도리 무엇이든 어딘가에 나름대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마크가 새겨진 것들을 준비해 왔다.
드디어 입장~!
매일매일 학교 왔다갔다 하면서 이 옆을 지나면서 언제 한번 가보나 했는데, 드디어 들어가 보는군. 경기장은 꽤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배트맨 영화 마지막 시리즈에서 악당 베인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폭파시키는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이곳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그런데, 막상 자리로 들어가는 입구를 이렇게 막고 있다. 무슨 일인가 보니, 미국 국가를 부르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내일이 Veteran's day라고 국가 마지막에 경기장 위를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폭죽 같은 것을 터뜨리나 보다. (실제 보진 못했고 소리를 듣고 추측한 것 ㅋ) 뭔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비집고 들어가서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 그게 다 끝나고 나서야 입장을 시켜주는 매정한 staff 들... 에~이 좋은 구경 놓쳤네...
요기가 우리 자리. 3층이었지만, 생각보다 잘 보인다.
아직도 폭죽이 남기고 간 연기가 자욱하다.
관중들이 이미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한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거의 90% 이상이 백인들이다. 미국에서 농구는 흑인 스포츠, 풋볼은 백인 스포츠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아시아인은 정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경기 시작 직전에 양팀 주장이 동전을 던져서 공격권이나 진영 위치 등을 정한다.
Kick Off!
Lions 측에서 공을 차는 것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것 참...
실제 와서 보니, 서로 치고 받고 넘어지고...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격렬하다. 선수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 하다.
TV에선 항상 하이라이트만 보니깐, 20~30야드씩 한번에 잘 던지고 잘 달리고 전진을 잘 해서, 나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는데, 그런 장면을 경기당 한두번 밖에 안나오고, 한번 공격에 1~2 야드도 힘겹게 전진해 갔다. 공 든 사람 한번 넘어지면 10여명이 기냥 그 위에 엎어져서 샌드위치 게임을 하듯이 사람을 완전 찌부로 만들어 버리는 게 참 무섭기까지 했다.
관중들의 편파적인 응원 덕분인지 시작한지 5분도 안되어서 Bears가 먼저 7점을 득점한다. 관중석은 완전 난리법석이다.
그러자 막바로 Lions가 7점을 득점하면서 동점을 만든다. 관중석의 90%가 싸늘한데, 저 앞쪽에 자세히 보면 하늘색 티셔츠 입은 몇명이 용기있게 일어나서 기뻐하다가 부리나케 앉는다.
이 사진이 정말로 양팀 팬들의 감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진. ㅋㅋ Bears 팬들은 분위기가 싸~~하고 오른쪽 아래 Lions 팬 (하늘색 옷) 한명이 일어나서 매우 좋아한다. ㅋㅋ 저 여자도 저렇게 오래 하고 있진 못했고, 등뒤에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곧바로 앉았다.
전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도, 농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도 느낀 점인데...
미국 사람들은 경기장에 먹으러 가나보다. 경기가 한창 치열하게 진행중일 때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람들이 먹을 것을 들고 왔다갔다 한다. 메뉴도 햄버거, 핫도그, 치킨, 피자, 팝콘, 나초 등등 다양하다. 경기장에 있는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단 10초도 내 옆에 사람이 안지나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 그만 좀 쳐묵으라~! 경기 좀 보자~!! 좀 잘볼라고 통로쪽에 앉았다가 사람들이 엄청들 치고 지나가서 굉장히 신경 쓰였다.
경기 내내 이렇게 맥주 파는 사람들이 맥주를 팔러 다닌다. 이것도 엄청들 사먹어서 저런 사람들이 꽤 여러명 돌아다님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들은 비워진 박스 새 맥주로 채우러 다니기 바쁜 것 같았다.
한쪽 옆을 보니, 비워진 맥주 박스를 채우려는 판매원들이 줄을 서서 맥주를 받는 풍경이 펼쳐진다. 이 줄도 경기 내내 줄지 않았다.
치열했던 경기는 어느 새 하프 타임이 되고... 내일이 Veteran's Day라 군인들에 대한 표창 수여식 같은 걸 경기장 한복판에서 하고 있다.
후반에도 치열한 경기는 계속됐다. Lions가 득점을 계속해서 치고 나가고, Bears도 끈질기게 쫓아가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관중들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엄청 소리 지르면서 관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Bears의 터치다운을 심판들이 무효 처리해 버렸다. 관중들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오늘 새로운 영어 욕을 많이 배웠다.;;
21-13으로 지고 있던 Bears가 1분도 안남기고 극적인 터치다운을 성공해서 21:19로 2점차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추가 돌파로 2점을 얻으면 동점으로 연장전을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관중들은 마치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고 있는 듯,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처진 어깨를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Bears가 이겼으면 안그랬을텐데, 지고 나니 집으로 가는 길이 더욱 춥고 멀게 느껴진다. 우리는 미시간 호수쪽 길을 통해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 중간중간 관중들 중에 자기 흥분에 못 이겨서 싸우는 사람들을 3번이나 봤다. 몸싸움이 벌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 미식 축구는 팬들에게는 자존심을 걸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보다. 경기 패배가 결정되었을 때, 한 Lions 팬이 (술에 좀 취한 채) 3층 정도 난간에서 아래쪽을 보면서 Bears를 조롱하는 말을 던지자 열받은 Bears 팬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받아치면서, 서로 막 욕하고 싸우는데, 마치 7살 어린 애들이 '니가 더 바보다, 내가 더 바보다' 라고 하는 것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40살도 넘어 보이는 아저씨들에게서 왠지 모를 진심이 느껴졌다.
생전 처음 본 미식 축구는 정말 재미 있고, 박진감 넘쳤다. 전엔 룰을 잘 몰랐는데, 경기 당일 아침에 약 30분간 벼락치기로 기본적인 룰이라도 공부하고 가니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3층 자리인데도 200불에 육박하는 표 값을 내면서 다시 보고 싶진 않았다. (미식 축구는 워낙 격한 운동이라 한 시즌에 경기를 여러번 할 수 없기에, 경기 당 표 값이 매우 비싸다.)
무엇보다, 경기 내내 너무너무 추웠다;; 이런 실외 경기의 시즌이 왜 매년 겨울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By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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