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교통 위반 딱지 2

2014. 5. 14

 

달력 상으론 분명 봄인데, 시카고에선 겨울의 날씨가 계속 되던 4월의 어느 날...

 

우편함을 보니, City of Chicago에서 온 메일이 두 개나 들어 있다. 과거 경험 상, 조용히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시카고 시에서 보낸 메일들은 하나도 좋은 적이 없기에, 살짝 긴장하면서 조심스럽게 봉투를 살핀다. 이전에 교통 위반 딱지를 보내 왔을 때와 동일한 봉투와 형태이다. 이상하다... 저번에 벌금 낸 이후로 주변을 잘 살피면서 정말 조심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또 티켓을 받다니... 그것도 두 개씩이나?? 분명 또 멍청한 미국의 행정이 실수로 똑같은 메일을 두 번 보낸 것일 거라 생각하면서 봉투를 열어 봤다.

 

긴장하면서 열어 본 첫번째 봉투.

역시 예상한 바와 같이 교통 위반 티켓이 들어 있다. 내가 과속이라니... 맨날 양보할 거 다 양보하면서 천천히 운전하고 있는데... 고속도로에서도 나 혼자 규정 속도 지켜서 다른 차들이 전부 나 추월해서 다니는데, 과속이라니?? 자세히 읽어 보니, 이번엔 처음이니 경고에 그치고, 다음에 또 그러면 벌금을 때리겠다고 한다. 아마, 노란색 티켓은 경고 티켓인 모양이다. 일단 다행이다. ㅋㅋ

 

그런데, 내가 위반했다고 표시된 주소를 보니, 정말 엉뚱한 곳이다. 시카고 다운타운 서쪽 어딘가인데, 이 동네는 내 생활권하고는 너무 동 떨어져 있는 곳이다. 느리디 느린 미국의 행정 상, 항상 일이 벌어진 지 몇 주나 지난 후에 티켓이 날아오기 때문에, 대체 내가 티켓에 표시된 날짜와 시간에 저 장소에서 뭘 했는지, 아니, 저 장소에 있었는지조차 되돌려 기억해 내는 게 쉽지 않다. 달력과 그간의 카톡 등의 내용으로 한참을 추적한 결과, 이 날 이 동네를 지나간 것 같긴 하다. 이 날 서버브 지역에 갔다가 오는 길에 I-290 고속도로가 하도 막혀서, 중간에 로컬 도로로 빠져서 왔는데, 그러면서 이 동네를 지난 모양이다. 물론, 고속 도로도 아닌, 신호도 많은 로컬 도로에서 절대 과속을 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학교 주변 등 safety zone으로 지정된 곳에서 그냥 일반 시내 도로 다니듯이 지나간 모양이다. 음, 아마 safety zone 표시를 못 본 모양인데, 그걸 또 치사하게시리 숨어 있는 카메라로 찍다니 ㅎㅎ 저 동네는 다시는 안 갈테다. 암튼 이건 벌금이 없으니, 패스~!

 

두번째 봉투를 열어 보니, 참 낯익은 빨간 티켓이 들어 있다.

위에 첫번째 티켓처럼 주저리주저리 설명도 필요 없다. 오히려 간결하게 사진과 함께 신호위반이니 $100 내라는 게 참 심플하고 이해가 쉬워서 고맙다(?). 장소를 보니, 엇? 이건 학교 바로 근처다. 학교에 갈 때마다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사거리인데, 여기에서 빨간 신호에 우회전을 했다는 것이다. 사진이 찍힌 날짜와 시간을 보니, 지난 학기 기말고사 시험 날 아침이다. 저 날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자리 맡고 공부하다가 바로 시험 보려고 일찍 학교에 가던 중이었다. 나처럼 이렇게 착하게 이른 아침부터 공부하러 학교 가는 학생의 뒷통수나 찍어서 돈이나 뜯어 내다니...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진 속의 나는 이런 줄도 전혀 모르고 룰루랄라 학교에 열심히 가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저 곳은 학교에 가려면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곳이기에 시카고에 와서 지난 2년 간 수십번(수백번?) 지나간 길이다. 지난 번 신호 위반 티켓 이후로 특히나 우회전은 사주경계하고 조심해서 해 왔기 때문에 이런 티켓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었다. 여태까지 저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수십번도 더 했을텐데, 여지껏 티켓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게다가 저 곳에는 지난 번에 티켓을 받은 원인이었던 'No Turn on Red' 표지판도 분명 없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맨날 지나다니는 사거리이기에 눈 감고도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는 곳이었다. 뭔가 억울한 마음과 함께 이번에는 정말로 항의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드디어 이번에야 말로 나의 억울함을 밝혀내고 시카고 시에 복수를 해 줄 기회이다!

 

증거 수집을 위해 일단 사건 장소에 가 봤다. (가는 내내, 사진을 찍으면 어디에서 인쇄할 것인지, 어떤 크기로 인쇄하는 게 좋을지, 항의하는 레터는 어떤 식으로 쓸지 영작도 조금 해 보는 등 나름대로 완벽하고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ㅋㅋ)

 

요놈이 바로 나를 찍은 카메라다. 저번처럼 참 크다. 아예 대놓고 찍고 있다.

그런데, 수십번 다녀본 길이지만, 이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마도 최근에 생긴 듯 하다. 최근에 시카고 시에 재정이 안좋아져서 곳곳에 카메라도 설치하고 경찰들도 교통 단속을 더욱 깐깐하게 한다는 말을 언뜻 들었던 것도 같다. 이런 식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돈을 뜯어내려 하다니...

 

역시, 예상한 대로, No Turn on Red 표지판이 없다!! 나는 무죄인 것이다!!

저번 티켓을 받았을 때는 No Turn on Red 표지판이 있었기에, 빨간 불에서 우회전을 하면 안되는 곳이었지만, 이 곳엔 없다. 빨간 불에서 우회전을 해도 위반이 아니다. 역시 내가 이것을 놓쳤을 리가 없다.

 

여기저기 아무리 둘러봐도 No Turn on Red 는 없다!!

 

증거 수집을 마치고, 승리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항의할 서류 패키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미 승리는 확실했기에, 주변에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미국에 오래 산 동생이 한 마디 했다. '형, 그거 빨간불에 우회전 되어도, 정지선에서 Complete Stop 한 후에 우회전 해야 할걸요?' 엇, 정말?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운전면허 딸 때에도 이런 얘긴 몰랐고... 지난 2년여 동안 전혀 모르고 운전하고 다녔었다.

 

집에 돌아와 구글에서 자세히 찾아보니, 그 말이 맞았다. 사거리에서 빨간 불은 Stop 싸인과 동일하기 때문에, 우회전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Complete Stop 후에 우회전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어째서 이런 정보는 아무도 안 알려 주고, 이렇게 일부러 찾아 봐야지만 알 수 있는걸까... 그것도 $100 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City of Chicago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가 위반한 내용을 사진 뿐만 아니라,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도록 아주 친절하게 준비되어 있다. 이럴 때만 쓸데 없이 친절하다. 혹시나 내가 정지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어가서 확인해 봤는데, 영상 속의 내 차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도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우회전 후 사라진다. ㅋㅋㅋ

 

$100을 웹사이트 상에서 신용카드로 바로 결제하고 끝냈다.

시카고에 와서 운전한 지 2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두 가지 중요한 교통 규정을 알게 된 계기였다. 남아 있는 한달 여 기간 동안 또 다른 새로운 규정을 알게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By St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