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s Story/미국 생활기

영어에 대한 짧은 생각

시카고 커플 2019. 10. 26. 19:08
반응형

2014. 1. 18

 

일단 아래 동영상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

 

 

(출처: Youtube) 

 

 

영어는 참 어렵다.

한국에선 영어 좀 한다고 깝쭉대던 나였지만, 미국에 와 보니 더욱더 영어가 어렵다.

 

미국에 와서 좀 지내다 보니, 내가 알던 영어는 영어의 전부가 아니었다.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 때에도 계속 해 왔던 영어 듣기 평가, 수능 외국어 영역의 듣기 시험, 토익/토플 준비하느라 지겹도록 들어왔던 영어 테이프에서 나오던 영어는 내가 미국에서 접하는 영어의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럼, 나머지 영어는 무엇인가?

 

이번 학기 기업 재무 (Corporation Finance)를 강의하는 교수의 이름은 Amit Seru. 인도 출신 교수이다. 출신은 인도이지만,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고 미국에서 교수직을 하는 엄연한 미국인이다. 정말 똑똑하고 강의를 잘 한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인도식 영어 발음에 취약한 나는 알아 듣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렇듯, 우리 학교만 해도 인도계, 중국계 등등 미국이 아닌 외국 출신 교수들이 참 많다. 이건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전 미국 어디에서든 동일한 현상일 것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또박또박 말해 주는 백인이 아닌 이상 강의를 알아 듣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본의 아니게 수강신청 할 때에는 인종차별을 하게 된다. 백인 교수 위주로 강의를 신청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백인 영어면 괜찮을까?

 

전에 들었던 시장 외 환경 (Non-market Environment) 과목의 교수는 백인은 백인인데, 프랑스계 사람이다. 이 사람 영어는 지금까지 들었던 강의 중에 가장 알아듣기 힘들었다. 덕분에 학점도 제일 안좋았다 ㅠ.ㅠ 또한, Operations 과목의 교수도 백인이었는데, 러시아계통이라 역시 알아 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특이하게도 본인이 영어 못한다고 계속 자기비하 하면서 강의하는 스타일이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어서 그나마 나았다.

 

위에 언급한 교수들은 시카고 대학에서 인정받고 강의를 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들이다. 이 사람들 발음과 액센트가 미국의 백인들과 다르다고 해서 영어 못한다고 탓할 수 있을까??

 

MBA 학생들 중에도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고, 이들의 영어 발음과 액센트는 저마다 다르다. 같은 동양인들도 중국인/한국인/일본인/태국/베트남/홍콩/싱가폴 다 다르다. 그런데 아무도 '백인들'처럼 영어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저마다 언어의 억양 그대로 영어를 한다.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말은 다 통하고, 의사 전달만 정확히 되면 아무도 그 사람 영어가 어떻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말한 내용으로 판단하고 내용이 괜찮으면 그 사람도 똑똑하다고 판단한다. 아무리 영어 발음 좋은 백인 애들도 수업 시간에 하는 말 들어보면 말도 안되고 아주 멍청한 말도 많이 한다. 그런 애들은 아무리 영어 발음 좋고 말 빨리 해도 그냥 멍청한 애로 인식된다.

 

그나마 MBA 스쿨에서는 백인들이 대다수이니, 백인들하고 영어할 기회가 그나마 좀 있지만, 길거리에 나가 보면, 일상 생활에서 백인하고 영어할 기회는 거의 없다. 백화점/수퍼마켓 점원, 식당 종업원, 아파트 경비원, 기차 검표원, 버스/택시 운전사 등등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뭔가 대화를 나눠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미계 아니면 흑인이다. 그들도 특유의 발음과 액센트가 있다. 남미 출신들은 스페인어 하듯이 영어를 하는데, 그나마 내가 스페인어 공부도 좀 했고, 회사에서도 남미 애들하고 많이 일해서 좀 알아듣기 수월하다. 흑인들은... 다들 알다시피, 리듬을 타면서 랩하듯이, 혹은 싸우듯이 공격적으로 영어를 한다. 지금은 그나마  익숙해졌지만, 이 역시도 알아듣기 쉬운 영어는 아니다.

 

이렇게 영어는 다양하다. 물론, 아직 미국의 인구는 백인들이 60%를 넘게 차지하고는 있지만, 흑인/아시아인/남미계 등등 이민족들의 비중은 빠르게 늘어가고 있고, 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일들도 점점 늘어가면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처럼 '백인처럼 혀 잘 굴리는' 영어만을 고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혀를 잘 굴리면서, 단어-단어들을 똑바로 읽지 않고 두르뭉슬하게 빨리 읽어 버리고, 문장 중간 중간에 'Well...', 'like...', 'you know' 이런 것 좀 많이 넣어주면 "이 사람 영어가 익숙하다... 영어 잘한다"고 인식되는 게 참 웃긴다. 문법 정확히 알고, 단어 폭 넓게 알고,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발음 딱딱하다고 영어 못한다고 인식되어지는 한국 영어교육 및 일터의 현실이 참 답답하다. 아니, 미국 사람들도 영어 제대로 못하고 철자법 틀리고 문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발음 좀 한국스럽다고 주눅이 들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영어를 잘한다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정말로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그 사람의 의사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신속/정확하게 전달이 되었는지를 봐야지, 그 사람의 발음과 억양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네 방식으로 영어를 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게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한국식 영어 발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가 익숙한 방향으로 영어를 하면 발음에 신경쓰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가 다행히도 다른 언어들에 비해 발음이 정교하고 억양이 없는 편이라 그런지, 오히려 중국이나 인도 사람이 영어하는 것에 비해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스럽게' 영어 하는 것이 더 듣기 편하다는 미국 사람들의 의견도 여러번 들어봤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치원때부터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사회 나와서 까지 영어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다. 영어를 진짜로 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 인 것 같다. 실제로 미국 와서 생활해 보면, 명사/동사 단어만 나열해도 의사 전달이 명확히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발음/문법 신경 쓰느라 타이밍 놓치면 해야 할 말도 많아지고, 의사 전달도 안된다. 이게 맞건 틀렸건, 내 발음이 어떻건 간에, 말해야 하는 타이밍에 일단 말하고 보는 자신감과 용기... 이것이야 말로 영어 실력을 늘리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물론, 문법/어휘/독해도 열심히 공부한다는 전제 하에 ㅋㅋ)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길거리에서 길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I can't speak English.' 라는 '완벽한' 영어로 답을 하는 것에 놀란다고 한다. 저 문장만 봐도, 주어-동사-목적어의 3형식 완벽한 문장에, 조동사와 그것의 부정형, 그리고 조동사 뒤에 동사 원형이 나온다는 상당한 문법을 알지 못하고는 구사하기 힘든 문장이다. 우리 나라에서 중/고등학교만 나오면 이정도 영어는 다 구사할 수 있다. 이건 참 놀라운 것이다. 한국어는 영어랑 어순도 다르고, 문법도 다르고, 단어도 완전 다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영어랑 어순이 동일하고, 문법도 비슷하고, 단어도 비슷하거나 1:1 대응이 되는 언어들(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등)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 똑똑하고 노력도 많이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백인이 될 필요는 없다. 전세계 사람들과 의사소통만 하면 충분하다. 한국식 발음이라도, 자신감 있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사람이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By Steve

반응형